올해 여름(전기세)도 무사히 넘기기를...
물고기는 단어 그대로 물속에서 사는 생물이다. 산소 하나 없는 물속에서도 아가미만 있으면 호흡할 수 있다. 구태여 물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온기만으로도 물고기는 화상을 입어버리게 된다. 깃털만큼 가벼운 접촉조차 그들에겐 지옥 같은 열기일 것이다.
올해 여름은 말할 것도 없이 더웠다. 햇빛은 아스팔트도 녹일 수 있겠다는 양 내리쬐고 있고, 교실 곳곳에는 저 멀리 찰랑이는 바닷물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수영장 온도도 평소보다 따뜻했다.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 착각을 한 자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나는 큰 숨을 들이마셨다.
부글부글부글부글.
어둠이 밀려들었다. 선명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매미소리가, 바람소리가 전부 물거품으로 변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게서 멀어져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나 강렬한 햇빛조차도 지금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제아무리 한여름의 태양이라도 심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심해는 늘 어둡고, 차갑고, 또한 무서우리만큼 조용한 곳이라 생각했다. 그에 비하면 이곳에 있는 어둠은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처럼 어렴풋하게 밝았다. 어째서인지 안도감이 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려도 누군가가 답해줄 리 없었다. 들리는 건 오로지 물거품 소리뿐이었다.
발끝으로 딱딱한 물체가 닿았다. 한없이 가라앉을 것 같은 몸이 마침내 끝에 다다랐다는 증거였다. 동시에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다시피 한 수영장 특유의 비릿한 물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이 코끝을 두드렸다. 앙 다문 입술사이로 굴러들어온 액체는 컵 하나를 가득채운 수돗물에 비하면 조금 짠, 저 멀리 찰랑이는 바닷물에 비하면 밍밍한 맛이 났다.
중력에 거스르듯 자꾸만 위로 떠오르는 팔을 가슴 쪽으로 모은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열 손가락 모두 퉁퉁 부르터 있었다.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가볍게 비비자 쭈글쭈글해진 피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일정한 규칙도 패턴도 존재할 리 없는데도 절묘하게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멀어지는 물거품 소리가 파란 타일에 부딪쳐 다시 돌아올 즈음, 기억 하나가 또 다른 물거품에 섞여 떠오른다. 그때부터 벌써 몇 년이 지난 걸까.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어떤 대화를 나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기억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면 생각나지 않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몸 어딘가에 덩그러니 남겨진 흔적을 제외하면 오래된 기억은 대체로 흐릿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기 마련이었다.
소독약이 풍기는 수영장과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짠 바닷물의 차이는 뭘까.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 중 한 명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나 자신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한때, 라고 표현하는 건 지금은 그때만큼 간절한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혹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더 간절한 무언가가 생겼다는 뜻이거나.
통, 통. 소리 없는 발돋움질이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에서 끝이 난다. 발끝에만 맞닿은 타일이 발바닥 전체를 어루만진다. 이따금 불안정한 틈새가 발바닥이 간질이지만 그뿐이었다. 심해 깊숙한 곳까지 가라앉은 닻처럼 그 자리에 조용히 떠 있었다. 비록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닻에 비하면 내 몸은 조그마한 물결에도 금방 다른 곳으로 떠밀릴 만큼 약하고 보잘 것 없었다.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물속에서 지내는 시간은 즐겁다. 바다 위를 힘차게 달리는 배도, 단정하게 다린 새하얀 제복도, 몸 전체에 부딪치는 바닷바람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했던 것들이다. 어쩌면 머나먼 미래에 있는 자신도 계속 좋아하고 있을지 모른다.
불확실. 어릴 때는 의심하지 않고 생각했던 일들이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의심이 싹터서 모르는 사이에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그 꽃은 과연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어떤 색깔일까? 향기는? 어렸을 때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을 생각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물속에 있는 이 순간마저도 물거품처럼 떠오른다. 정작 수영하고 있을 때나 있는 힘껏 다이빙을 하고 있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지만.
‘그야 부활동이니까 딴 생각하면 안 되겠지.’
희뿌연 어둠이 장막처럼 드리운다. 균형을 잡으려고 남겨둔 긴장이 풀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타일에 맞닿은 발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불안정한 틈새가 점점 커져 더 이상 틈새라고 부를 수 없게 될 즈음.
부글부글부글.
다시 한 번 물거품 소리가 들렸다.
부글부글부글부글.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심지어 멀어지지긴커녕 점점 더 가까이, 먹먹해진 귓속을 파고들 듯 선명하기까지 했다. 그런 미묘한 차이에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금 눈꺼풀을 들었을까.
“——!!”
물거품이 되지 못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탓에 약간이지만 콧속으로 소독약 냄새가 나는 물이 들어왔다.
크고 작은 물거품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적포도주 빛깔의 머리칼 은 수면에 반사된 햇빛에 섞여 평소보다 한층 더 반짝였다. 열에 아홉은 팔(八)자 모양으로 하던 눈썹은 어째서인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하얀 건반 위에서 멋들어지게 춤을 추던 길고 새하얀 손가락은 그저 죽을힘을 다해 물속을 헤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이.
‘와앗!’
‘리코쨩’의 손이 내 팔을 강하게 거머쥐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위로 끌어당겼다. 운동은 루비만큼이나 자신이 없다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거짓말 같이 느껴지는 악력이었다. 이대로 팔을 뜯길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상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내 얼굴을 응시하는 호박색 눈동자는 어디까지나 필사적이었다.
‘아, 설마.’
그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오히려 알아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첨벙첨벙. 첨벙첨벙.
정신없이 흔들리는 물결에 튄 물방울이 볼을 때린다. 잠수한 지 얼마나 지난 걸까. 줄곧 참고 있던 숨이 해방되는 것과 동시에 뜨겁게 달군 공기가 폐에 스며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뒤늦게야 밀려드는 산소부족으로 살짝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요우쨩! 요우쨩! 정신이 들어?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먹먹해진 귀가 간신히 제 기능을 찾기가 무섭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맑은 하늘에 울려 퍼지는 갈매기의 울음소리처럼 온 몸을 통과하는 깨끗한 목소리.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 리코쨩?”
콧속에 들어간 물에 머리가 찡, 하고 아파온다. 순간 눈가에 맺힌 눈물이 생각보다 뜨거워서 무심코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 안 그래도 긴장한 리코쨩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리, 리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에 나는 지금 당장 오해를 풀고자 말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리코쨩의 두 팔이 기세 좋게 목을 감싸 안았다. 줄곧 물속에 있었던 탓에 리코쨩의 체온은 평소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어째설까. 한순간이지만 자신이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평소처럼 수영연습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기다린 건데!”
“으, 응.”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요우쨩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지! 수영부원이라곤 요우쨩 이외에 아무도 없지!”
“미, 미안, 리코쨩. 오늘 개인연습이라서 다른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미안! 정말로 미안해!”
연이은 질책에 사과 이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리코쨩이 품은 오해를 풀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수차례 질책과 사과, 사과와 질책이 오간 끝에 간신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러들었다. 리코쨩은 머리끝까지 오른 흥분이 겨우 진정되었는지 잔잔히 흐르는 물결에 조용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리코쨩과의 거리는 그대로였다. 내 몸을 껴안은 채 익숙하지 않은 수영과 잠수로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리코쨩?”
조심스레 이름을 부른다.
“응.”
그러자 멀어지는 물거품처럼 조그마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 많이 놀랐지?”
“많이 놀란 정도가 아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응. 미안.”
“나라면 10초도 못 버티고 나왔을 텐데.”
정말이지 대단하다니까. 리코쨩은 그렇게 말하며 목 주변에 두른 팔을 내렸다. 무섭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햇볕 아래. 다시 거리를 두고 바라본 리코쨩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고 있었다. 선박에 부딪쳐 산산이 흩어지는 파도 같은 눈물이 호박색 눈동자를 한층 더 반짝이게 했다.
“그보다 리코쨩.”
“응?”
“옷 어떻게 할 거야?”
“옷?”
철제 파이프가 설치된 수영장 가장자리로 이동하는 도중 리코쨩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싶던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아아, 하고 탄식 섞인 한숨을 쉬었다.
블라우스에 리본, 치마, 그리고 양말까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다.
“오늘 체육복 가지고 왔어?”
“으으응. 오늘은 순전히 작곡이랑 그림 때문에 학교에 온 거였으니까.”
“그럼 내꺼 빌려줄게.”
“요우쨩 수영부원 아니었어? 설마 매일 체육복 가지고 다니는 거야?”
“응, 매일 가지고 다는데? 운동하는 애들은 다 그렇다구.”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리코쨩을 대신해 먼저 뭍으로 올라온다. 그 뒤에 다시 자세를 바꿔 혹여 가라앉을까 수영장 가장자리를 꼭 붙잡고 있는 리코쨩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나, 둘, 세엣! 하는 구호에 맞춰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은 나를 발견했을 때처럼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아―, 뭔가 엄청 피곤해졌어.”
“수영이란 게 의외로 체력이 많이 필요한 운동이니까.”
“그래서 요우쨩이나 카난 선배의 체력이 남다른 거고?”
“굳이 비교하자면 카난쨩 쪽이 훨씬 더 위랄까. 어릴 때부터 쭉 알고 지냈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전∼혀.”
자포자기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뜨끈뜨끈한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매년 학교 풀숲에서 목청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매미소리가 오늘은 자장가처럼 들린다. 스스스, 하고 귓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나뭇잎 소리. 차가워진 피부에 스며드는 햇살. 크고 작은 물방울이 천천히 허공으로 날아갈 때마다 간질간질하고 포근한 감촉이 밀려들었다. 마치 한여름 차갑게 식힌 이불에 온몸을 맡긴 것처럼 편안했다.
“그러고 보니 리코쨩이 여긴 웬일이야? 작곡 때문에 음악실에 계속 있었던 거 아니었어?”
“잠깐 머리 좀 식힐 겸 미술실에서 그림 그리고 있었어. 다음 라이브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도 하고, 작곡하느라 계속 미루던 그림도 그리고 싶었고.”
“그랬구나. 아, 치카쨩은?”
“교실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왜?”
“요우쨩 찾으려고.”
“치카쨩이?”
반사적으로 상체를 들어 리코쨩을 내려다본다. 어느 샌가 나타난 그림자가 호박색 눈동자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요우쨩은 치카쨩 이야기만 하면 걱정부터 하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면서.”
“딱히 걱정은…….”
“좀 부럽네.”
리코쨩은 한 번 빙긋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위로 향한다.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치맛단에 맺힌 물방울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바닥에 떨어졌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긴 와인색 머리칼은 선선히 부는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리코쨩의 새하얀 볼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리코쨩 말대로 익숙하지 않은 잠수에 피곤해져서일까.
“점심.”
“응?”
“그게 나랑 치카쨩이 요우쨩을 찾은 이유야.”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리코쨩의 길고 새하얀 손가락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리코쨩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물속에 있었을 땐 그렇게나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던 체온이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부글부글부글.
작디작은 물거품이 떠오른다. 줄곧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의문 하나를 껴안은 채 점점 멀어져간다.
“갈까?”
앞으로도 나는 물고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물속에서 나를 끌어올렸을 때처럼 강하게 마주잡은 손을 견디기 어려울 테니까.
“……응.”
그러니까 계속 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남몰래 기도했다.
물고기는 단어 그대로 물속에서 사는 생물이다. 산소 하나 없는 물속에서도 아가미만 있으면 호흡할 수 있다. 구태여 물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온기만으로도 물고기는 화상을 입어버리게 된다. 깃털만큼 가벼운 접촉조차 그들에겐 지옥 같은 열기일 것이다.
올해 여름은 말할 것도 없이 더웠다. 햇빛은 아스팔트도 녹일 수 있겠다는 양 내리쬐고 있고, 교실 곳곳에는 저 멀리 찰랑이는 바닷물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수영장 온도도 평소보다 따뜻했다.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 착각을 한 자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나는 큰 숨을 들이마셨다.
부글부글부글부글.
어둠이 밀려들었다. 선명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매미소리가, 바람소리가 전부 물거품으로 변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게서 멀어져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나 강렬한 햇빛조차도 지금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제아무리 한여름의 태양이라도 심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심해는 늘 어둡고, 차갑고, 또한 무서우리만큼 조용한 곳이라 생각했다. 그에 비하면 이곳에 있는 어둠은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처럼 어렴풋하게 밝았다. 어째서인지 안도감이 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려도 누군가가 답해줄 리 없었다. 들리는 건 오로지 물거품 소리뿐이었다.
발끝으로 딱딱한 물체가 닿았다. 한없이 가라앉을 것 같은 몸이 마침내 끝에 다다랐다는 증거였다. 동시에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다시피 한 수영장 특유의 비릿한 물 냄새가 기다렸다는 듯이 코끝을 두드렸다. 앙 다문 입술사이로 굴러들어온 액체는 컵 하나를 가득채운 수돗물에 비하면 조금 짠, 저 멀리 찰랑이는 바닷물에 비하면 밍밍한 맛이 났다.
중력에 거스르듯 자꾸만 위로 떠오르는 팔을 가슴 쪽으로 모은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아니나 다를까 열 손가락 모두 퉁퉁 부르터 있었다.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가볍게 비비자 쭈글쭈글해진 피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일정한 규칙도 패턴도 존재할 리 없는데도 절묘하게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멀어지는 물거품 소리가 파란 타일에 부딪쳐 다시 돌아올 즈음, 기억 하나가 또 다른 물거품에 섞여 떠오른다. 그때부터 벌써 몇 년이 지난 걸까.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어떤 대화를 나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기억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면 생각나지 않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몸 어딘가에 덩그러니 남겨진 흔적을 제외하면 오래된 기억은 대체로 흐릿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기 마련이었다.
소독약이 풍기는 수영장과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짠 바닷물의 차이는 뭘까.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 중 한 명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나 자신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한때, 라고 표현하는 건 지금은 그때만큼 간절한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혹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더 간절한 무언가가 생겼다는 뜻이거나.
통, 통. 소리 없는 발돋움질이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에서 끝이 난다. 발끝에만 맞닿은 타일이 발바닥 전체를 어루만진다. 이따금 불안정한 틈새가 발바닥이 간질이지만 그뿐이었다. 심해 깊숙한 곳까지 가라앉은 닻처럼 그 자리에 조용히 떠 있었다. 비록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닻에 비하면 내 몸은 조그마한 물결에도 금방 다른 곳으로 떠밀릴 만큼 약하고 보잘 것 없었다.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물속에서 지내는 시간은 즐겁다. 바다 위를 힘차게 달리는 배도, 단정하게 다린 새하얀 제복도, 몸 전체에 부딪치는 바닷바람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했던 것들이다. 어쩌면 머나먼 미래에 있는 자신도 계속 좋아하고 있을지 모른다.
불확실. 어릴 때는 의심하지 않고 생각했던 일들이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의심이 싹터서 모르는 사이에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그 꽃은 과연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어떤 색깔일까? 향기는? 어렸을 때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을 생각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물속에 있는 이 순간마저도 물거품처럼 떠오른다. 정작 수영하고 있을 때나 있는 힘껏 다이빙을 하고 있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지만.
‘그야 부활동이니까 딴 생각하면 안 되겠지.’
희뿌연 어둠이 장막처럼 드리운다. 균형을 잡으려고 남겨둔 긴장이 풀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타일에 맞닿은 발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불안정한 틈새가 점점 커져 더 이상 틈새라고 부를 수 없게 될 즈음.
부글부글부글.
다시 한 번 물거품 소리가 들렸다.
부글부글부글부글.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심지어 멀어지지긴커녕 점점 더 가까이, 먹먹해진 귓속을 파고들 듯 선명하기까지 했다. 그런 미묘한 차이에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금 눈꺼풀을 들었을까.
“——!!”
물거품이 되지 못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탓에 약간이지만 콧속으로 소독약 냄새가 나는 물이 들어왔다.
크고 작은 물거품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적포도주 빛깔의 머리칼 은 수면에 반사된 햇빛에 섞여 평소보다 한층 더 반짝였다. 열에 아홉은 팔(八)자 모양으로 하던 눈썹은 어째서인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하얀 건반 위에서 멋들어지게 춤을 추던 길고 새하얀 손가락은 그저 죽을힘을 다해 물속을 헤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이.
‘와앗!’
‘리코쨩’의 손이 내 팔을 강하게 거머쥐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위로 끌어당겼다. 운동은 루비만큼이나 자신이 없다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거짓말 같이 느껴지는 악력이었다. 이대로 팔을 뜯길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상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내 얼굴을 응시하는 호박색 눈동자는 어디까지나 필사적이었다.
‘아, 설마.’
그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오히려 알아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첨벙첨벙. 첨벙첨벙.
정신없이 흔들리는 물결에 튄 물방울이 볼을 때린다. 잠수한 지 얼마나 지난 걸까. 줄곧 참고 있던 숨이 해방되는 것과 동시에 뜨겁게 달군 공기가 폐에 스며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뒤늦게야 밀려드는 산소부족으로 살짝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요우쨩! 요우쨩! 정신이 들어?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먹먹해진 귀가 간신히 제 기능을 찾기가 무섭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맑은 하늘에 울려 퍼지는 갈매기의 울음소리처럼 온 몸을 통과하는 깨끗한 목소리.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 리코쨩?”
콧속에 들어간 물에 머리가 찡, 하고 아파온다. 순간 눈가에 맺힌 눈물이 생각보다 뜨거워서 무심코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 안 그래도 긴장한 리코쨩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리, 리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에 나는 지금 당장 오해를 풀고자 말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리코쨩의 두 팔이 기세 좋게 목을 감싸 안았다. 줄곧 물속에 있었던 탓에 리코쨩의 체온은 평소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어째설까. 한순간이지만 자신이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평소처럼 수영연습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기다린 건데!”
“으, 응.”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요우쨩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지! 수영부원이라곤 요우쨩 이외에 아무도 없지!”
“미, 미안, 리코쨩. 오늘 개인연습이라서 다른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미안! 정말로 미안해!”
연이은 질책에 사과 이외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리코쨩이 품은 오해를 풀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수차례 질책과 사과, 사과와 질책이 오간 끝에 간신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러들었다. 리코쨩은 머리끝까지 오른 흥분이 겨우 진정되었는지 잔잔히 흐르는 물결에 조용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리코쨩과의 거리는 그대로였다. 내 몸을 껴안은 채 익숙하지 않은 수영과 잠수로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리코쨩?”
조심스레 이름을 부른다.
“응.”
그러자 멀어지는 물거품처럼 조그마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 많이 놀랐지?”
“많이 놀란 정도가 아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응. 미안.”
“나라면 10초도 못 버티고 나왔을 텐데.”
정말이지 대단하다니까. 리코쨩은 그렇게 말하며 목 주변에 두른 팔을 내렸다. 무섭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햇볕 아래. 다시 거리를 두고 바라본 리코쨩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고 있었다. 선박에 부딪쳐 산산이 흩어지는 파도 같은 눈물이 호박색 눈동자를 한층 더 반짝이게 했다.
“그보다 리코쨩.”
“응?”
“옷 어떻게 할 거야?”
“옷?”
철제 파이프가 설치된 수영장 가장자리로 이동하는 도중 리코쨩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싶던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아아, 하고 탄식 섞인 한숨을 쉬었다.
블라우스에 리본, 치마, 그리고 양말까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다.
“오늘 체육복 가지고 왔어?”
“으으응. 오늘은 순전히 작곡이랑 그림 때문에 학교에 온 거였으니까.”
“그럼 내꺼 빌려줄게.”
“요우쨩 수영부원 아니었어? 설마 매일 체육복 가지고 다니는 거야?”
“응, 매일 가지고 다는데? 운동하는 애들은 다 그렇다구.”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리코쨩을 대신해 먼저 뭍으로 올라온다. 그 뒤에 다시 자세를 바꿔 혹여 가라앉을까 수영장 가장자리를 꼭 붙잡고 있는 리코쨩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나, 둘, 세엣! 하는 구호에 맞춰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은 나를 발견했을 때처럼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아―, 뭔가 엄청 피곤해졌어.”
“수영이란 게 의외로 체력이 많이 필요한 운동이니까.”
“그래서 요우쨩이나 카난 선배의 체력이 남다른 거고?”
“굳이 비교하자면 카난쨩 쪽이 훨씬 더 위랄까. 어릴 때부터 쭉 알고 지냈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전∼혀.”
자포자기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뜨끈뜨끈한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매년 학교 풀숲에서 목청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매미소리가 오늘은 자장가처럼 들린다. 스스스, 하고 귓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나뭇잎 소리. 차가워진 피부에 스며드는 햇살. 크고 작은 물방울이 천천히 허공으로 날아갈 때마다 간질간질하고 포근한 감촉이 밀려들었다. 마치 한여름 차갑게 식힌 이불에 온몸을 맡긴 것처럼 편안했다.
“그러고 보니 리코쨩이 여긴 웬일이야? 작곡 때문에 음악실에 계속 있었던 거 아니었어?”
“잠깐 머리 좀 식힐 겸 미술실에서 그림 그리고 있었어. 다음 라이브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도 하고, 작곡하느라 계속 미루던 그림도 그리고 싶었고.”
“그랬구나. 아, 치카쨩은?”
“교실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왜?”
“요우쨩 찾으려고.”
“치카쨩이?”
반사적으로 상체를 들어 리코쨩을 내려다본다. 어느 샌가 나타난 그림자가 호박색 눈동자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요우쨩은 치카쨩 이야기만 하면 걱정부터 하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면서.”
“딱히 걱정은…….”
“좀 부럽네.”
리코쨩은 한 번 빙긋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위로 향한다.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치맛단에 맺힌 물방울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바닥에 떨어졌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긴 와인색 머리칼은 선선히 부는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리코쨩의 새하얀 볼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리코쨩 말대로 익숙하지 않은 잠수에 피곤해져서일까.
“점심.”
“응?”
“그게 나랑 치카쨩이 요우쨩을 찾은 이유야.”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리코쨩의 길고 새하얀 손가락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리코쨩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물속에 있었을 땐 그렇게나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던 체온이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부글부글부글.
작디작은 물거품이 떠오른다. 줄곧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의문 하나를 껴안은 채 점점 멀어져간다.
“갈까?”
앞으로도 나는 물고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물속에서 나를 끌어올렸을 때처럼 강하게 마주잡은 손을 견디기 어려울 테니까.
“……응.”
그러니까 계속 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남몰래 기도했다.


